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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박달재의 김취려장군 흔적들..(11)

승암 2016. 11. 26. 23:29

 

 

 


김취려장군 흔적들..

김취려장군이 거란족과 크고작은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린 곳이 바로 이곳 제천 박달령 전투였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거란족은 퇴각을 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이때의 공적으로

고려 고종15년 최고의 관직인 중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하는바 이렇게 큰 전공을 세웠건만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이 없고 잘 알려지지 못하였다..

 

 그 자랑스런 애국충정과 조국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용맹하게 전투에 임한

사실을 알리고자 김취려장군의 후손인 안국사 주지스님이 사비를 투자해 사진에서 보는

장군의 석상과 전적비 추모장소 등을 세웠다고..

 

 

 

 

 

 

 

 

 

 

 

 

 

 

 

 

 

 

 

 

 

 

 

 

탐방일자 : 2016/11/7

 

 

 

김취려장군의 박달령 전투 이해.. 

 

1217년 7월 거란장수 질명이 인솔하는 10만 대군으로 충주를 거쳐 제천의 박달산을 침공하여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박달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전술전략의 일부 내용이다..거란군이 진을 치고 있는 개평역에 도착했으나 거란군의 수효가 너무 많아 우군은 서산의 기슭에서, 중군은 들에서 조금 물러나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이때 취려장군이 칼을 뽑아 들고 기마를 채찍질하여 질풍같이 돌진하니, 이를 본 수하 장졸들이 용기를 얻어 결사적으로 돌격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제천 쪽으로 패주하는 거란군을 추격하면서 벌어진 6번의 전투에서 모두 연전연승하니, 거란 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함경도 여진 땅으로 패주 하였다. 박달령에서 일어난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경상도 지방은 전란의 화를 모두 피하게 되었으나, 김취려 장군은 오랜 전투에서 오는 누적된 과로로 마침내 병상에 눕게 되었다고..      

자료 : http://www.nannara.com / 위열공 (威烈公) 취려장군(就礪將軍)/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