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탐방/문화유적, 고택들 93

일제강점기 대학자의 고택! 김정회 고가..(12)

김정회 고가 [金正會 古家]..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김정회가 살았던 조선 후기 고택으로 일제강점기 때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가 살던 옛 집.. 안채·사랑채·행랑채·사당 및 2채의 곳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동측에 행랑이 있으며 사랑 뒤에는 안채가 1m 정도의 높은 기단 위에 위치하며 마당 양측에는 2채의 곳간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이다..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普亭) 김정회(金正會, 1903∼1970)는 기우만(奇宇萬)에게 한학을 배우고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그 중 난초와 대나무 그림은 매우 유명하다.. 자료 : 김정회 고가 (대한민..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이던 김소희 생가..(9)

김소희 생가 [金素姬 生家]..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 있는 김소희가 살았던 개항기 고택으로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으로 불리는 만정 김소희의 생가.. 김소희는 1917년에 태어나 1929년에 광주의 송만갑 문하로 들어가 판소리 공부를 하였는데, 15세에는 제1회 전국춘향제전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였고, 이후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에게 사사하였다고.. 1964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김소희는 안향렬,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오정해 등의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판소리를 세계화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다.. 자료 : 김소희 생가 [金素姬 生家]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탐방일자 : 2017/01/05

민족적 정조와 선율을 읊어낸 미당의 생가..(14)

미당 서정주 생가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의 생가에서 1915년 5월 18일 미당은 태어났는데 어릴 때 한학을 배우고 중앙불교 전문강원 수학 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고..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주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토속적인 분위기가 배경인 요악한 그의 작품 경향은 한국시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확대 재발견을 도모하고 있다.. 시집 '귀촉도'는 초기의 악마주의적 생리에서 벗어나서 동양적인 사상으로 접근하여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파"시인으로 면목이 일신되어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와 선율을 읊어 냈으며 시집으로는 '화사집(1941)', '신라초(1960)'..

항일운동의 선구자! 백관수선생 고택..(13)

백관수 선생 고택.. 전북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 있는 백관수의 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90호.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로 이루어진 중농규모의 남부지방 민가. 대숲이 감싸는 완만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고 안채를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사랑채가 자리한다.. 백관수는 1889년에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으며 1915년 경성법학전문을 마치고 중앙학교의 교원이 되었고 1919년 2월 동경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 단장이 되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는데 그뒤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다가 1937년 동아일보사장에 취임. 3년 뒤 신문사가 폐간당할 때 항의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8·15 광복 후에는 정치가로 활약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자료 ..

남종화 대가 허백련의 의재문화유적지..(18)

무등산 의재문화유적지..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이 중년 이후 타계할 때까지 기거했던 춘설헌 주위로 미술관, 관풍대, 춘설차시음장, 차공장, 의재묘소를 묶어 의재문화유적지로 구성하여 남종화의 대가를 추념하고 그의 작품 및 흔적을 느껴보도록 한 곳.. 의재는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일본과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경험을 쌓아 1938년 전라도 광주에 정착하여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발족하여, 전통서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고,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으며 무등산의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을 경영하면서,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도 힘썼다고 한다.. 의재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의재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남도의..

외딴 민가 옆에 서 있는 신룡동 오층석탑..(4)

신룡동오층석탑 (新龍洞五層石塔) ..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탑은 2층 기단위로 5층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인데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어 있다.. 광주 광산구 신룡동에 위치하고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 탑 해체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갈천 김빈이 살았던 반송재 고택..(8)

반송재 고택 (伴松齋 故宅).. 갈천 김빈이 살던 가옥으로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 있는데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도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으로 벼슬을 그만둔 후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살았다.. 이 집은 김빈의 아우 김정이 세운 것으로 후에 자손들의 가세가 기울자 팔았다가 구한말 이유인이 사들여 광무 3년(1899)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담장 안에 있는 안채와 사랑채는 남향으로 배치하였고 곳간채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앞에 담장과 연결된 대문채가 있는데 영남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배치를 보여 준다.. 자료 : 문화재청/문화유산정보 탐방일자 : 2016/11/08

돌담길 따라 걸어보는 금당실 전통마을..(40)

금당실 전통마을.. 이 마을은 풍수 적으로 매우 좋은 곳으로, 북동쪽으로는 소백준령이 감싸고, 서남쪽으로는 금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을 갖춘 명당이며 마을의 뒷편으로 소백산이 둘러져있고 두 개의 물 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가 펼쳐져 그 안에 금당실 마을이 있다.. 이와같이 처음 이것을 언급한 사람은 금당실에 정착한 박씨(박종린)와 변씨(변응년) 두 입향조(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들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마을의 형국은 연못이고 오미봉은 마치 그 연못에 떠있는 연꽃봉우리처럼 생겨 이곳 지형을 연화부수형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예천군지'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달구리재(계명헌 鷄鳴峴)'가 앞에 있고 '개우리재(견곡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