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국가/체 코 9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4)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 엊저녁에 정신없이 야경을 보고 아침에 다시 들른 구시가지 광장풍경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였다.. 얀 후스 기념비를 가운데 두고 주위를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매우 훌륭한 공공장소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보헤미아 독립운동의 투사인 보얀 후스(Jan Hus)의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에는 나찌에 의해 만자 십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또 이 광장은 1422년에는 성직자 Zelivsky의 처형장소였으며 1918년은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 등을 벌인 애환이 깃든 곳이기도 하단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1...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래 지금껏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소라..

13세기의 모습 체스키크룸로프..(10)

체스키크룸로프성의 정문을 지나서.... 강변에 서있던 레스토랑.. 왕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체스키크룸로프성 입구...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 내려다 본 도시풍경...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체스키 크룸로프 (Cesky Krumlov)는 인구 약 1만 5천의 작은 도시이다.. 13세기에 한 지주가 이곳에 성을 건설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도 시작되었다고.. .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 내려다 본 도시1.. .이미 700년의 역사가 흘렀으나 사진에서와 같이 중세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어 체코에선 프라하에 이어 2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으며, 블타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쪽으로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바바리아를 서로 분리시키는 슈마바산 ..

프라하성의 비투스대성당..(7)

성 비투스 대성당의 모습...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대주교좌로 프라하성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이 뛰어난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1989년에 성 비투스, 성 바츨라프, 성 보이테흐 대성당으로 개명하였다. 이 대성당에는 여러 명의 체코 왕과 여러 성자들,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 아랫쪽... 카메라가 전경모습을 한장에 담을 수 없어 나누었는데 이 성당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조 시절인 1638년에 예수회에서 약 100년에 걸쳐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유행한 3개의 회중석을 둔 스타일 대신에 이태리 베니스에 기초한 유럽의 현대건축기법을 도입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건물의 지붕 또한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유..

체코 프라하의 왕궁..(7)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왕궁의 정문... 양쪽 기둥위 조각상의 위에서 핍박하는 자는 오스트리아인, 핍박으로 고통받는 자는 체코인을 묘사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약 300년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당시의 설욕을 잊지말고자 동상을 제작하여 고통을 상기한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만약 우리였다면 그렇게 치욕적인 모습으로 동상제작까지 하였을까?? 왕궁 (Prazsky Hard)은 오스트리아 지배전 16세기 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전이었던 곳으로, 중세 체코 정치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왕궁 관람중에서 중세 유럽 최대의 홀인 브라티슬라브의 대형 홀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고, 수백년 전 보헤미아를 통합했던 보헤미아 대법관정이 있었던 홀도 꼭 한번 살펴보았으면 한다... 왕궁앞 광장 1....

온천도시 까를로비 바리..(7)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도시를 관광하였는데 프라하에서 서쪽 약 130여km 떨어진 서부 보헤미아 지방에 위치하고있는 까를로비바리는 도시이다.. 온천 휴양도시답게 숙박시설도 잘되어 있었으며 도시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쾌적하여 장기간 체류하며 온천수를 마시고 병을 치료하기 좋다고 한다.. 특이한 점이 온천욕을 하는게 아니고 마시는 온천이라는 것이다.. 까를로비바리는 서기 1349년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까를 4세가 사냥 도중 온천에 빠진 자신의 사냥개를 구하려다 화상을 입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우연한 계기에 온천을 발견한 카를 황제는 그 후 온천을 개발하는 한편 그곳을 황실의 직할지로 편입하여 버렸다고 한다..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와 온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