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탐방/문화유적, 고택들 58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고창무장동헌..(5)

무장동헌 (茂長東軒)..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로 당시 현감이 집무하던 곳.. 조선 명종 20년(1565)에 세웠으며 한때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하여 변형이 된 것을 1989년 원형으로 복원하였다고.. 앞면 6칸·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무장읍성 안쪽에 위치한 동헌으로 가는 길..왼쪽에 연못과 정자, 오른쪽으로 객사가 있다.. 탐방일자 : 2017/01/05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무장객사..(5)

무장객사 (茂長客舍).. 전북 고창군 무장읍성 내에 있는객사는 궐패를 모셔 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우현으로 구성되었고 이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맛배지붕 건물로 초석의 석재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탐방일자 : 2017/01/05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 도산서당..(9)

도산서당.. 전북 고창읍 도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도산서당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일명 섬뜸서당이라 불렸으며, 일찍부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인근 학동들을 위한 강당으로 쓰였다 하며, 도산초등학교 개교 때 교사를 구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수업을 하던 곳이었으며 당호를 만수당이라고도 하는데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도산서당은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이었으며 17세기경 세워진 조선시대 건물로서 원형이 잘 보존된 채 남아있어 조선시대 서당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탐방일자 : 2017/01/05

제2대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 생가..(22)

김성수(金性洙) 생가.. 1861년에 세워진 가옥으로,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며 정치,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우리 근대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촌 김성수(金性洙)(1891∼1955) 선생의 생가이자 인촌의 동생이자 민족자본 육성의 대표자인 수당 김연수 선생이 태어나신 곳.. 김성수는 경성방직주식회사와 동아일보를 세웠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었는데 이곳은 우리 근대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김성수 선생과 김연수 선생이 평생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모습을 함께 되새겨 볼 수 있어 더욱 뜻이 깊은 집.. 현재 전반적으로 많은 보수가 이루어져 옛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우나 가옥에 들어서기 전 가옥의 외곽을 감싸고 있는 석회 돌담은 증축된지 얼마 되지 않은 담으로 깔끔..

일제강점기 대학자의 고택! 김정회 고가..(12)

김정회 고가 [金正會 古家]..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김정회가 살았던 조선 후기 고택으로 일제강점기 때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가 살던 옛 집.. 안채·사랑채·행랑채·사당 및 2채의 곳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동측에 행랑이 있으며 사랑 뒤에는 안채가 1m 정도의 높은 기단 위에 위치하며 마당 양측에는 2채의 곳간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이다..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普亭) 김정회(金正會, 1903∼1970)는 기우만(奇宇萬)에게 한학을 배우고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그 중 난초와 대나무 그림은 매우 유명하다.. 자료 : 김정회 고가 (대한민..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이던 김소희 생가..(9)

김소희 생가 [金素姬 生家]..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 있는 김소희가 살았던 개항기 고택으로 국악계의 사표이며 국창으로 불리는 만정 김소희의 생가.. 김소희는 1917년에 태어나 1929년에 광주의 송만갑 문하로 들어가 판소리 공부를 하였는데, 15세에는 제1회 전국춘향제전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였고, 이후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에게 사사하였다고.. 1964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김소희는 안향렬, 신영희, 이명희, 안숙선, 오정해 등의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판소리를 세계화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다.. 자료 : 김소희 생가 [金素姬 生家]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탐방일자 : 2017/01/05

항일운동의 선구자! 백관수선생 고택..(13)

백관수 선생 고택.. 전북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 있는 백관수의 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90호.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로 이루어진 중농규모의 남부지방 민가. 대숲이 감싸는 완만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고 안채를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사랑채가 자리한다.. 백관수는 1889년에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으며 1915년 경성법학전문을 마치고 중앙학교의 교원이 되었고 1919년 2월 동경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 단장이 되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는데 그뒤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다가 1937년 동아일보사장에 취임. 3년 뒤 신문사가 폐간당할 때 항의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8·15 광복 후에는 정치가로 활약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자료 ..

남종화 대가 허백련의 의재문화유적지..(18)

무등산 의재문화유적지..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이 중년 이후 타계할 때까지 기거했던 춘설헌 주위로 미술관, 관풍대, 춘설차시음장, 차공장, 의재묘소를 묶어 의재문화유적지로 구성하여 남종화의 대가를 추념하고 그의 작품 및 흔적을 느껴보도록 한 곳.. 의재는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일본과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경험을 쌓아 1938년 전라도 광주에 정착하여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발족하여, 전통서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고,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으며 무등산의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을 경영하면서,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도 힘썼다고 한다.. 의재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의재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남도의..

돌담길 따라 걸어보는 금당실 전통마을..(40)

금당실 전통마을.. 이 마을은 풍수 적으로 매우 좋은 곳으로, 북동쪽으로는 소백준령이 감싸고, 서남쪽으로는 금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을 갖춘 명당이며 마을의 뒷편으로 소백산이 둘러져있고 두 개의 물 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가 펼쳐져 그 안에 금당실 마을이 있다.. 이와같이 처음 이것을 언급한 사람은 금당실에 정착한 박씨(박종린)와 변씨(변응년) 두 입향조(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한 각 성씨의 조상)들로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마을의 형국은 연못이고 오미봉은 마치 그 연못에 떠있는 연꽃봉우리처럼 생겨 이곳 지형을 연화부수형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예천군지'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달구리재(계명헌 鷄鳴峴)'가 앞에 있고 '개우리재(견곡현)'가 ..

화순의 대신리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22

화순 대신리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 대신리 발굴지 보호각이 세워진 곳은 고인돌 유적지가 자리한 논 한가운데라는데 이곳에는 주변의 고인돌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다양한 형태의 무덤방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시신이 안치되었던 다양한 고인돌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리 발굴지 보호각에는 저마다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에는 시신의 뼈와 돌칼, 화살촉, 토기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고 다양한 크기의 무덤과 청동기 시대 유물이 다수 보존되어 있는 대신리 발굴지 보호각은 청동기 시대의 장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장소라고 여겨진다.. 유적의 연대는 목탄으로 분석한 방사성 탄소 연대와 토기로 분석한 열발광 연대축정에 의해 지금부터 2500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