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탐방/절, 교회, 서원사당 102

'무소유의 삶'을 보여주던 성철스님 생가..(9)

성철스님 생가..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성철이 대원사(大源寺)로 출가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생가터로, 성철스님 동상 뒤편으로 2000년 10월 복원한 스님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되었고 혜근문(惠根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선친의 호를 따서 율은고거(栗隱古居)라고 이름붙인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가사·장삼·고무신·지팡이·친필자료·안경·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성철의 영정을 모신 안채는 일반인들이 참배..

충민공 양산숙 일가의 정려! 양씨삼강문..(6)

양씨삼강문..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忠愍公) 양산숙(梁山璹) 일가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635년(인조 13)에 건립한 목조로 된 정려..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두 명씩을 모셨으나 현재는 나주의 회진 임씨 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의 딸을 임씨 문중에서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의 정려만 모셔져 있다.. 탐방일자 : 2017/03/15

금성산 남쪽 기슭 골짜기의 다보사 ..(14)

금성산 다보사 [多寶寺].. 금성산 남쪽 기슭의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661년(신라 태종무열왕 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1184년(고려 명종 14)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 1568년(선조 1) 서산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좁은 골짜기 지형 속에 들어앉아 사방이 울창한 숲과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 수려한 경관의 다보사는 대웅전·명부전·영산전·천불보전·칠성각·요사 및 선원·범종각·금강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산에서 초옥을 짓고 수행하던 스님이 땅에서 솟아난 칠보로 장식된 큰 탑 속에서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출현하는 꿈을 꾼 뒤 사찰을 창건했다 하여 사찰명을 다보사(多寶寺)라 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자료 : 다보사 [多寶寺] (두산백과) 탐방일자 : 2017/02/19

경남 산청 대성산 자락의 정취암..(8)

정취암(正趣庵).. 경남 산청군 신등면의 대성산 기암절벽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 신문왕 6년(686년) 의상대사가 동해에 솟아오른 아미타불의 두 줄기 서광을 보게 되었는데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한 줄기는 이곳 대성산에 비추는 걸 보시고는 금강산에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이곳 정취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 조선 중기의 기록에서는 정취사라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에는 정취암이라 기록되어 있어 그 명칭이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고 전해온다.. 탐방일자 : 2017/01/31

거대한 황동불상으로 유명한 남미륵사..(25)

남미륵사.. 전남 강진읍 군동면 화방산 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1980년에 법흥 스님이 세운 세계 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이자 동양 최대의 거대한 황동불상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역사가 오래된 전통 사찰은 아니지만 봄철이면 200만주의 철쭉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설이 있는 원통 주목으로 조각된 33세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는 관음전과 2만3천불이 봉안된 만불전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어 관심을 끈다.. 탐방일자 : 2017/01/10

두분의 토불이 모셔진 강진 용문사..(11)

강진 용문사.. 강진 만덕산 자락,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며 두구의 토불을 모시고 있는데 예부터 영험하기 이를데 없다는 토불로 전해오면서 전국에서 소원을 빌러 찾아오는 탐방객이 많다고 한다.. ​ ​이 사찰 토불의 정확한 조성 연도는 알수 없으나 고려시대 토불 양식인 점과 섬세한 면으로 보아 고려 청자의 전성기이던 12세기를 전후, 강진에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로서 흙으로 빚어졌지만 매우 섬세하며 1975년 개금작업하였다고 한다.. 자료 : story 77616 탐방일자 : 2017/01/10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증심사..(18)

증심사 ..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 도윤(道允)이 517년에 세운 절..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1443년)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의 3대 선사가 4창(四創)했다고 한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고.. 유물로는 오백전(五百殿)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 131호),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 (지방유..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신 월봉서원..(16)

월봉서원(빙월당)..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위패를 모신 서원인데 고봉은 28세 때 《주자대전》 100여 권을 탐독한 후 4권의 《주자문록》을남겼으며, 경연에서 선조에게 전한 말을 묶은 《논사록》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무엇보다 기대승이라는 이름은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하다.. '인·의·예·지'인 사단(四端)과 '희·노·애(슬픔)·락·애·오·욕'인 칠정(七情)에 관한 8년간의 논쟁은 편지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당시 선비들 사이에서는 그 편지를 필사해 돌려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고 하며 긴 철학적 논쟁 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고 흠모했다고 전한다.. 26세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존중했으며, 강변에서 함께 유숙하며 인간적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는데..